📑 목차
1. 서론: 국경을 넘어 이어진 이름의 뿌리
한국의 성씨는 오랜 세월 동안 한반도 안에서만 형성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김, 이, 박, 최 같은 성씨가 대부분 토착 혈통에서 발전한 반면, 일부 희귀 성씨는 외국에서 건너온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특히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중국, 몽골, 여진, 일본, 중앙아시아 출신의 귀화인이 많았고, 그들의 후손들이 한국식 성씨를 받아 새로운 가문을 형성했다. 이러한 외래계 성씨들은 오늘날 인구는 매우 적지만, 한국 문화의 다양성과 개방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다. 이번 글에서는 외국계 혈통이 포함된 희귀 성씨의 대표적인 사례와 그 유래를 역사적 맥락 속에서 살펴본다.
2. 고려시대: 외국계 성씨의 출발점
고려는 개방적인 나라였다. 송나라, 원나라, 일본, 중동 지역과의 교류가 활발했고, 외국인들이 관직과 학문, 군사, 상업 분야에서 활약했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외국계 성씨가 생겨났다.
가장 잘 알려진 예는 **제갈(諸葛)**씨다. 제갈씨는 본래 중국 제나라 귀족 가문 출신으로, 삼국지의 명장 제갈량으로 유명하다. 고려 초기에 중국 남부 출신 제갈씨 후손이 귀화하면서 한국에 뿌리를 내렸다. 제갈씨는 충청도와 전라도 일대에 퍼져 있으며, 현재 전국적으로 약 1300명 정도가 남아 있다.
또 다른 사례는 **황보(皇甫)**씨다. ‘황제의 울타리’라는 뜻을 가진 이 성씨는 당나라 귀족 가문 출신으로, 신라 말기에 귀화한 인물 ‘황보밀’이 시조로 전해진다. 황보 씨는 고려시대 문무를 겸비한 가문으로 성장했으며, 현재는 충청도와 경상도 일대에 약 700명 정도만 남아 있다.
**남궁(南宮)**씨 역시 중국계 복성이다. 주나라 남궁씨남궁 씨 가문의 후손이 고려에 들어와 귀화했고, 경상남도 함양을 본관으로 정했다. 남궁은 ‘남쪽의 궁궐’을 의미하며, 중국 고대 귀족 문화를 상징한다. 현재 남궁 씨는 복성 중 인구가 가장 많은 약 9000명 정도다.
이처럼 고려는 외국 출신 인물들이 자신의 문화와 혈통을 한국 사회에 녹여낼 수 있었던 드문 시대였다.
3. 원나라와의 교류로 생겨난 몽골계 성씨
13세기 고려는 원나라와 깊은 관계를 맺었다. 원의 간섭기에 많은 고려 귀족이 원나라 왕실과 혼인했고, 몽골계 혈통이 한국 왕실과 귀족 사회에 스며들었다. 이 시기 등장한 외국계 성씨 중에는 몽골 또는 중앙아시아계 성씨가 포함되어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탁씨(卓氏)**다. 지금은 희귀 성씨지만, 고려 후기에는 몽골계 귀화 장군의 후손으로 전해진다. ‘탁’은 ‘높고 뛰어나다’는 뜻으로, 몽골어의 “탁하(탁월하다)”에서 음차 된 이름으로 추정된다. 현재 전국적으로 100명 이하의 인구만 남아 있으며, 충청도와 전라도 일부 지역에서 확인된다.
또 다른 희귀 성씨인 **독고(獨孤)**씨 역시 몽골계와 중국 북방계 혈통이 혼합된 가문으로 알려져 있다. 독고씨는 북위 시대 선비족(鮮卑族) 귀족에서 유래했으며, 고려 초기에 귀화한 후 왕실과 혼인 관계를 맺었다. 지금은 황해도와 평안도 출신 후손들이 극소수 남아 있다. 독고는 ‘홀로 높다’, ‘고결하다’는 의미로, 귀족 계급의 상징이었다.
또한 **제노(諸盧)**씨라는 매우 희귀한 성씨도 중앙아시아계 혈통으로 추정된다. ‘노’는 옛 투르크어로 ‘사람’을 뜻하며, 고려시대 상단 무역에 종사하던 귀화 상인 집안이 그 뿌리로 전해진다. 현재는 기록으로만 존재한다.
4. 일본계와 여진계 성씨의 등장
조선시대에는 일본과 여진(후금, 즉 청나라의 전신)과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외국계 성씨가 생겨났다.
대표적으로 **왜(倭)**씨가 있다. ‘왜’는 일본을 가리키는 옛 표현이다. 임진왜란 이전, 고려 말~조선 초기에 일본 무역상들이 한반도에 귀화하면서 이 성씨를 사용했다. 조선 초기에 일부 문헌에서는 왜씨 가문이 경상남도 남해와 통영 지역에서 확인되지만, 이후 조선의 대일정책 강화로 인해 이름이 사라졌다.
여진계 성씨로는 **탁정(卓井)**씨가 있다. 충청남도 공주에 본관을 둔 이 성씨는 고려 말 여진 출신 관리의 후손으로 알려졌다. 탁정은 ‘높고 맑은 우물’이라는 뜻으로, 조선 초기에는 청렴한 관리 집안으로 명성이 높았다. 현재 전국적으로 5명 이하의 인구만 남아 있다.
또한 함경도 일대에서는 **하융(夏戎)**씨 같은 이국적인 복성도 발견된다. ‘융(戎)’은 고대 중국에서 북방 민족을 지칭하던 글자이며, 여진계 혹은 거란계 후손이 한국화 된 이름으로 추정된다. 이 성씨 역시 현재 실존 인구는 없지만, 조선 중기 문헌에서 한때 언급된 기록이 있다.
이처럼 여진계와 일본계 성씨는 한국과 주변국 간의 긴장과 교류가 공존했던 역사적 상황을 그대로 반영한다.
5. 중앙아시아와 서역에서 들어온 외래 성씨
고려시대에는 중앙아시아에서 온 상인과 기술자들이 귀화하며 새로운 성씨를 만들었다. 그중 일부는 오랜 세월 동안 잊혀져 희귀 성씨로 남았다.
**석(石)**씨와 **함(咸)**씨는 그 대표적인 예다. 석씨는 고대 실크로드를 통해 들어온 서역계 혈통으로, 중국 북부를 거쳐 한반도로 들어온 상인 가문이었다. ‘석’은 실제로 돌을 뜻하지만, 서역 언어의 ‘샤크(Shak, 강함)’에서 변형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함씨는 ‘하미(哈密, 중앙아시아의 지역)’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고려시대 외교 사절단 기록에 ‘하미국 상인 함적(咸積)’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며, 그의 후손이 한국에 귀화해함 씨 본관을 형성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 외에도 고려시대 ‘아랍 상인 설’을 가진 희귀 성씨로 **설(薛)**씨와 **두(杜)**씨의 일부 분파가 있다. 이들은 무역과 학문을 통해 고려 왕실과 교류했으며, 현재 일부 가문은 자신들의 뿌리가 중앙아시아 혹은 페르시아 지역임을 증언하고 있다.
6. 외국계 희귀 성씨의 현재 현황
2025년 기준으로 외국계 혈통이 포함된 성씨는 전체 성씨의 약 3% 정도이며, 대부분이 희귀 성씨로 분류된다. 복성인 제갈, 남궁, 황보, 선우를 포함해 탁, 독고, 탁정, 하융 같은 성씨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인구는 대체로 100명 이하이며, 일부는 족보와 문헌 기록으로만 존재한다. 그러나 최근 디지털 아카이브의 발전으로 사라졌던 성씨의 뿌리를 찾는 연구가 활발하다. 학계에서는 한국의 성씨 문화가 단일 민족적 전통만이 아니라 다문화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외국계 성씨 후손들 사이에서는 “우리 가문의 이름은 한국의 다양성을 상징한다”는 자부심이 커지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는 이러한 성씨를 단순한 희귀함이 아니라 “이름 속의 세계사”로 인식하며, 가문의 역사를 복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7. 결론: 한국 속의 세계, 성씨가 증명한다
한국의 희귀 성씨 중 외국계 혈통이 포함된 사례들은 국경을 넘어 이어진 인류의 교류사를 보여준다. 중국의 귀족 가문에서, 몽골의 전사들로부터, 중앙아시아의 상인과 여진의 관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민족이 한반도에서 새로운 뿌리를 내렸다.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그 안에 수백 년의 문화와 피의 흔적이 담긴 기록이다. 희귀 성씨는 작지만, 그 속에는 세계와 연결된 한국의 역사가 살아 있다.
사라지거나 희미해진 이름 속에서 우리는 단일 민족이라는 신화 뒤에 숨겨진 풍부한 교류의 흔적을 읽을 수 있다. 이름은 작지만, 그 이름이 증언하는 역사는 결코 작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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