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성씨

‘제갈’, ‘선우’, ‘독고’… 복성씨의 유래와 실제 사용 현황

allin-one 2025. 11. 5. 20:08

1. 서론: 이름 속에 숨은 귀족의 흔적

한국의 성씨 가운데 대부분은 한 글자다. 김, 이, 박, 최처럼 짧고 간결한 이름이 사회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하지만 그 가운데 특별한 존재들이 있다. 두 글자로 이루어진 복성(複姓)이다.

희귀 성씨

복성은 말 그대로 두 글자를 합친 성씨로, 흔하지 않은 만큼 그 기원과 역사가 매우 깊다. 대표적으로 제갈(諸葛), 선우(鮮于), 남궁(南宮), 독고(獨孤), 사공(司空), 황보(皇甫), 구월(丘月) 같은 이름들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중국과 중앙아시아 귀족에서 유래하거나, 삼국시대 귀화인 가문이 뿌리를 이루었다. 오늘날 복성은 드물게 남아 있으며, 전국 인구의 약 0.1% 정도만이 복성을 사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성은 단순한 이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름 두 글자 속에는 수백 년의 역사, 권력, 문화 교류의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2. 복성의 기원과 역사적 배경

복성의 역사는 중국에서 시작된다. 중국 고대 사회에서는 왕족과 귀족을 구별하기 위해 복성을 사용했다. 예를 들어 제갈량으로 유명한 제갈씨는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의 귀족 가문에서 비롯되었다. 제갈은 제(齊) 나라의 ‘제’와 성문(葛城)의 ‘갈’을 합쳐 만든 복합 성씨로, 본래 한 지역의 귀족을 가리키던 이름이었다. 이런 제도가 한반도로 전해진 것은 삼국시대와 고려 초기다. 당시 중국, 유목민, 중앙아시아에서 온 귀화인들이 관직과 함께 복성을 하사 받거나 그대로 유지하며 정착했다.

 

 

고구려와 백제, 신라에도 복성을 가진 귀족이 많았다. ‘선우(鮮于)’는 고구려의 귀족 칭호에서 비롯되었으며, ‘황보(皇甫)’는 신라 왕족과 혼맥을 맺은 중국계 가문이다. ‘남궁(南宮)’은 중국 남궁씨 가문이 고려로 귀화해 뿌리를 내린 예다. 고려 후기와 조선 초기에 들어 복성은 점차 줄어들었는데, 이는 행정상 불편함과 혼인 제도의 변화, 그리고 본관 정리 과정에서 단성으로 개명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 가문은 끝까지 이름을 지켰고, 오늘날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3. 대표 복성씨의 유래와 상징적 의미

1) 제갈(諸葛)

가장 널리 알려진 복성으로, 중국 삼국시대의 제갈량으로 유명하다. 제갈씨는 본래 제나라 귀족 출신으로, 고려시대 학자들과의 교류를 통해 한국으로 전해졌다. 한국의 제갈씨는 전라도 지역에서 주로 분포하며, 일부는 충청도와 서울에도 거주한다. 제갈씨는 지혜와 충성을 상징하는 이름으로, 학문과 인문학 분야에서 자부심이 크다.

2) 선우(鮮于)

선우는 고구려 귀족의 호칭에서 비롯되었다. 원래는 군주를 뜻하는 말이었으나, 이후 성씨로 정착했다. 선우 씨는 고려시대 문신 선우유가 대표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전국적으로 약 800명 정도가 선우 씨를 사용하고 있으며, 강원도와 경기 북부 지역에 많이 분포한다. 선우는 고귀함과 품격을 상징한다.

3) 독고(獨孤)

독고씨는 북위(北魏) 시대 북방 유목민인 선비족에서 유래했다. 중국 역사에서 독고가는 왕비와 장군을 배출한 명문 귀족 가문이었다. 이 성씨는 고려 초기 귀화인을 통해 한반도에 들어왔으며, 일부는 황해도와 평안도 지역에 정착했다. 독고는 ‘고결함과 독립’을 상징하며, 그 뜻 그대로 자존심이 강한 성씨로 여겨졌다.

4) 남궁(南宮)

남궁씨는 복성 중에서도 인구가 가장 많은 성씨 중 하나다. 중국 주나라 남궁가의 후손이 한반도로 들어와 고려시대에 정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관은 함양으로, 경상도 일대에 후손이 집중되어 있다. 남궁은 ‘남쪽 궁궐’을 의미하며, 따뜻함과 풍요를 상징한다. 현재 전국적으로 약 9000명 정도가 존재한다.

5) 황보(皇甫)

황보 씨는 중국 당나라 시대 귀족 가문에서 유래했다. 신라시대에 귀화한 황보밀이 대표적인 시조로 알려져 있으며, 경상북도와 충청도 지역에 후손이 남아 있다. 황보는 ‘왕의 울타리’라는 뜻을 지니며, 충성과 충직을 상징한다.

이 외에도 사공(司空), 서문(西門), 제노(諸盧) 등 다양한 복성이 전해지지만, 대부분 현재 인구는 수백 명 이하로 줄어든 상태다.


4. 복성의 감소와 단성화의 역사

복성은 오랜 세월을 거치며 점점 사라져 갔다. 고려 말과 조선 초기에 성씨 정리 사업이 이루어지면서 복성은 행정상 혼란을 줄이기 위해 단성으로 바뀌었다. 예를 들어 황보 씨는 ‘황’이나 ‘보’로, 남궁 씨는 ‘남’으로 변경된 사례가 있다. 또한 혼인 금혼령으로 인해 복성이 결혼 상대를 찾기 어려워지면서, 일부 가문은 스스로 단성화를 선택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창씨개명 정책으로 인해 복성의 단성화가 더욱 가속화되었다. 복성은 일본식 발음에 맞지 않아 대부분이 강제로 한 글자 성씨로 변경되었고, 해방 이후에도 복성을 되찾지 못한 가문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복성을 다시 되찾으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주민등록법 개정으로 복성 사용이 자유로워지면서, 원래의 이름을 되찾는 후손들이 늘고 있다.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 덕분에 복성은 ‘전통의 상징’으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5. 복성씨의 현재 인구 분포와 사회적 인식

2025년 기준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복성을 사용하는 인구는 전체 인구의 약 0.12% 수준이다. 남궁 씨가 약 9000명, 제갈씨 약 1300명, 선우 씨 약 800명, 황보 씨 약 700명, 독고씨 약 300명으로 조사되었다. 이들은 전국적으로 고르게 분포되어 있지만, 특정 지역 중심으로 세거 하는 경향이 있다.

 

 

흥미로운 점은 복성에 대한 인식이 세대별로 다르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서류 처리의 불편함 때문에 복성을 불편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독특한 이름으로 인해 오히려 개성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복성은 귀족의 이름 같다”, “이름에서 전통의 품격이 느껴진다”는 긍정적인 반응이 늘고 있다. 실제로 복성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통해 역사적 자부심을 느끼며, 가문의 의미를 후대에 전달하려 노력하고 있다.


6. 복성이 가진 문화적 가치와 보존의 필요성

복성은 단순히 두 글자의 이름이 아니다. 그것은 수천 년의 문화 교류와 혈연의 흔적이자, 한국인의 정체성이 형성되는 과정의 일부다. 복성은 다양한 민족과 문화를 포용했던 고려와 조선의 개방성을 상징한다. 또한 복성은 언어적으로도 아름답다. 제갈의 강직함, 선우의 품격, 남궁의 온화함, 황보의 고귀함은 각각 다른 정서를 전한다.

 

 

복성을 보존하는 일은 단순한 이름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과거의 역사와 문화를 이어가는 일이며, 언어적 다양성을 지키는 행위다. 복성 후손들이 스스로 이름을 지키려 노력하고, 사회가 이를 존중할 때 복성은 단순한 전통이 아닌 ‘살아 있는 역사’로 남을 수 있다.


7. 결론: 두 글자에 담긴 천 년의 이야기

‘제갈’, ‘선우’, ‘독고’ 같은 복성은 숫자로 보면 극소수지만, 그 속에는 수천 년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그들은 단지 이름이 긴 사람들이 아니라, 문화와 역사, 그리고 조상의 정신을 이어가는 사람들이다. 이름은 짧아도 의미는 깊고, 글자는 적어도 역사는 길다. 복성은 단성보다 불편할 수 있지만, 그 불편함 속에 품격과 자부심이 함께 존재한다.

 

 

이름 하나에도 역사가 있고, 성씨 하나에도 정신이 있다. 복성은 한국 사회의 뿌리를 잇는 또 하나의 문화적 유산이다. 두 글자로 된 그 이름들은 앞으로도 세월을 넘어 조용히 우리의 역사 속에서 살아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