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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씨’, ‘진씨’, ‘승씨’… 우리가 잘 몰랐던 특이한 성씨들

📑 목차

    익숙한 성씨의 바닷속에 숨은 낯선 이름들

    한국에서 성씨는 사회적 뿌리이자 정체성을 상징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김 씨, 이 씨, 박 씨 같은 대중적인 이름 속에서 살아가며, 그 너머의 세계를 잘 모른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전체 인구 중 약 55%가 세 성씨 안에 포함되어 있다. 나머지 수백 개의 성씨들은 전체 인구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비율로 존재한다.

    희귀성씨


    그중에서도 ‘맹씨(孟氏)’, ‘진 씨(秦氏)’, ‘승 씨(承氏)’는 우리가 일상에서 거의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지만, 수백 년의 역사를 품고 있다. 이들은 왕조의 교체기, 유교 문화의 정착, 불교의 영향 등 각 시대의 철학적 흐름 속에서 등장했다. 즉, 이 성씨들은 단순히 이름이 아니라 한 시대의 가치관과 신념을 상징하는 언어적 유산이다.


    이 글에서는 우리가 잘 몰랐던 이 세 성씨의 유래, 철학, 그리고 그들이 남긴 이야기를 통해 한국 성씨 문화의 깊이를 들여다본다.


    1. ‘맹씨(孟氏)’ – 유학의 계보를 잇는 학자의 성씨

    ‘맹 씨’의 한자 ‘孟’은 ‘마도 맹’, 즉 장남을 뜻한다. 이는 단순히 가문 내의 서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책임이 크고 덕이 높은 사람’을 상징한다. 중국 고대 철학자 맹자(孟子)에서 비롯된 이 글자는 유교에서 도덕과 학문을 대표하는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의 맹씨는 주로 영천맹 씨, 진주맹 씨, 제주맹 씨로 나뉜다. 고려 후기 문신 맹현(孟顯)이 영천 지역에 정착하며 가문을 세웠다는 설이 있고, 제주 지역에서는 맹성(孟誠)이라는 유학자가 조선 초기 서당 교육을 전파했다고 전해진다.


    맹 씨 가문은 조선 시대에 학문과 충절의 상징으로 불렸다. 실제로 조선 후기 문신 맹사성(孟思誠)은 청백리로 이름을 남겼으며, 그의 가문은 ‘학문의 집안’으로 평가받았다.


    ‘맹’이라는 글자는 ‘지혜롭고 깊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도 있다. 그래서 맹 씨 성을 가진 사람들은 ‘책임감과 도덕’을 가문의 정신으로 여기며, “맹 씨는 배우는 가문”이라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 한국의 맹씨 인구는 약 2만여 명으로 추정되지만, 본관별로 보면 일부는 200명 이하인 경우도 있다. 그만큼 드물고, 그러나 고결한 의미를 품은 이름이다.


    2. ‘진씨(秦氏)’ – 왕의 나라에서 온 이름, 귀족의 혈통을 잇다

    ‘진 씨(秦氏)’는 한자 ‘秦’, 즉 중국 진(秦) 나라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진’은 원래 서쪽의 제후국 이름이었고, 후에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면서 왕조의 이름이 되었다. 그래서 ‘진’이라는 글자는 강력한 통치력, 질서, 권위를 상징한다.


    한국에서 진씨의 시조는 고려 초기에 중국에서 귀화한 진극형(秦克衡)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당나라에서 학문을 닦은 뒤 고려에 들어와 외교관으로 활동했으며, 경상남도 진주에 정착했다. 그래서 후손들이 진주진 씨라는 본관을 사용하게 되었다.


    진씨 가문은 고려 말과 조선 초기에도 문무 양반을 다수 배출했다. 조선 세종 때에는 학자진량(秦亮)이 ‘진 씨 12 가문’을 대표하며 성리학 보급에 기여했다. 진 씨 집안의 가훈 중에는 “가득 채우되 넘치지 말라(滿而不溢)”라는 문구가 있는데, 이는 한자 ‘秦’의 의미인 ‘가득 찰 진’을 해석한 것이다.


    오늘날 진씨 인구는 약 15만 명으로 알려져 있지만, 특정 본관을 제외하면 매우 드문 편이다. 특히 거제진 씨, 용궁진 씨는 1000명 미만으로 남아 있어 ‘역사적 귀족 성씨’로 불린다. 진 씨의 역사는 곧 귀화와 융합의 역사이며, 한반도 문화가 외래 사상과 결합하며 형성된 흔적을 보여준다.


    3. ‘승씨(承氏)’ – 불교의 정신을 품은 희귀한 이름

    ‘승 씨(承氏)’는 ‘이을 승’, ‘받들 승’이라는 뜻을 가진 한자를 사용한다. 이 글자에는 가르침을 이어받고, 신념을 계승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래서 승 씨는 불교와 유교, 두 철학의 교차점에 놓인 성씨라고 할 수 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고려 후기 고승이었던 승효(承曉)가 불교를 전파하며 제자들에게 “내 가르침을 이어받는 사람은 ‘승’을 성씨로 삼으라”라고 하였고, 그의 후손 중 일부가 세속으로 돌아와 이 성씨를 유지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승 씨는 종교적 색채를 띤 성씨가 되었다.


    본관은 충남 아산, 전남 장흥, 경북 상주 등에서 확인된다. 그러나 족보가 완전히 남아 있는 가문은 매우 드물며, 전국적으로 인구가 500명 이하로 추정된다.


    ‘승’이라는 이름의 철학적 의미는 깊다. 그것은 단순히 ‘이음’이 아니라 ‘책임의 계승’을 뜻한다. 즉, 조상의 신념과 정신을 오늘의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승씨 가문의 후손 중에는 유학자, 교육자, 예술인 등이 많아, 이름의 뜻처럼 정신적 유산을 잇는 계보로 평가된다.


    4. 이름에 담긴 철학 – 세 성씨의 공통된 세계관

    맹씨, 진 씨, 승 씨는 각각 다른 시대에 태어났지만, 공통된 철학을 공유한다. 세 이름 모두 ‘계승’과 ‘책임’, 그리고 인간의 도리’를 강조한다.


    맹 씨는 유학적 인간상을, 진 씨는 질서와 도덕의 균형을, 승 씨는 영적 계승과 신념의 지속을 상징한다. 세 성씨 모두 사회의 중심보다는 주변부에 머물렀지만, 그 이름의 의미는 한국 문화의 정신적 기반과 닮아 있다.


    또한 이 세 성씨는 모두 학문, 도덕, 신앙을 중요시했던 가문이다. 유교의 도덕, 왕권의 질서, 불교의 자비라는 세 축이 이들의 이름 속에 공존한다. 즉, 이들은 한국 역사 속에서 지식과 신념의 계보를 잇는 이름들이다.


    이런 이름들이 희귀해진 이유는, 시대가 변하면서 정신적 가치보다 실용적 가치가 중시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름의 의미가 잊히더라도, 그 이름이 가진 철학은 여전히 사회 곳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5. 희귀 성씨가 남긴 유산 – 이름은 사라져도 뜻은 남는다

    오늘날 맹씨, 진 씨, 승 씨를 가진 사람들은 전국적으로 많지 않다. 그러나 이 성씨들은 숫자보다 중요한 문화적 깊이를 남겼다.
    맹씨는 학문과 청렴의 상징으로, 진 씨는 귀족적 품격과 책임의 정신으로, 승 씨는 종교적 계승과 신념의 상징으로 전해진다. 그들의 역사는 마치 오래된 한 장의 족보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 이야기다.


    희귀 성씨가 사라진다는 것은 곧 그 문화적 세계가 사라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부 젊은 세대는 자신의 성씨를 자부심으로 받아들이며, SNS나 블로그를 통해 “내 성씨를 알리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름은 시간이 지나도 남는다. 그 이름을 기억하고, 의미를 되새기며, 다시 기록하는 순간, 그 이름은 살아난다.

     

    결국 맹씨, 진 씨, 승 씨의 이야기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름이란, 단순한 표식이 아니라 세대를 잇는 정신의 끈이다.”
    그 끈이 끊어지지 않는 한, 한국의 성씨 문화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